고구려의 영토 확장 기사를 읽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십만 대군이 밀려와도 고구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흔히 평야 지대에서 펼쳐지는 기마전만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고구려 방어 가치관의 핵심은 산에 쌓은 견고한 '성곽'에 있었습니다.
처음 요동 지역의 고구려 산성 유적을 보았을 때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가파르고 험준한 산등성이를 따라 정교하게 깎은 돌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멘트나 콘크리트 같은 현대식 접착제도 없던 천여 년 전, 고구려인들은 어떻게 가파른 절벽 위에 수십 미터 높이의 돌성벽을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렸을까요? 여기에는 대지진과 세찬 폭우를 견뎌내게 한 고구려만의 독보적인 '그랭이 공법'과 과학적 축성술이 숨어 있습니다.
기초부터 다르다, 자연석과 인공석의 완벽한 조화 '그랭이'
성벽을 쌓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은 '바닥의 불균형'입니다. 산악 지형은 평지와 달라서 바닥 바위(암반)가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심합니다.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바위를 평평하게 깎아내느라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낭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구려 석공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바위를 깎는 대신, 성벽의 맨 아래에 놓일 돌을 바닥 바위의 굴곡에 맞게 깎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그랭이 공법'이라고 부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반 위에 다듬을 돌을 올린 뒤,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도구(그랭이칼)를 이용해 아래쪽 바위의 곡선을 위쪽 돌에 그대로 받아 적듯 선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위쪽 돌의 아랫면을 정교하게 깎아냅니다. 이렇게 가공된 돌을 얹으면 두 돌이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빈틈없이 맞물리게 됩니다.
이 공법이 무서운 이유는 지진이나 지반 침하가 일어났을 때 발휘되는 방어력 때문입니다. 접착제를 쓰면 강한 충격이 왔을 때 굳은 부위가 부러지거나 통째로 깨집니다. 반면 그랭이 공법으로 맞물린 고구려 성벽은 지진으로 땅이 흔들릴 때 돌들이 미세하게 같이 움직이며 충격을 흡수(면진 효과)합니다. 흔들림이 끝나면 돌의 무게 때문에 다시 원래의 안정된 위치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고구려 성벽이 고스란히 서 있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옥수수알 모양의 성돌과 속채움의 유체역학
성벽을 구성하는 돌의 모양 자체에도 비밀이 있습니다. 고구려 성성을 가까이서 보면 성벽 표면의 돌들이 사각형이 아니라 앞면은 평평하고 뒷부분은 쐐기처럼 뾰족한 '옥수수알'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귀찮게 돌 뒤쪽을 뾰족하게 깎았을까요? 성벽 겉면에 이 옥수수알 모양의 성돌을 안쪽으로 깊숙이 박아 넣고, 그 뒤쪽 공간에는 주먹만 한 막돌(잡석)들을 흙과 함께 단단히 채워 넣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속채움'이라고 합니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내리면 성벽 뒤쪽의 산에서 엄청난 양의 물과 흙이 밀려 내려옵니다. 이때 성벽 내부의 수압을 배출하지 못하면 아무리 단단한 성벽이라도 배가 부르다가 툭 터지듯 무너집니다. 고구려 성벽은 뒤쪽의 뾰족한 돌들과 잡석 사이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성벽 자체가 거대한 배수 필터 역할을 한 것입니다. 흙은 걸러내고 물만 아래로 쏙 빼주니, 성벽이 받는 거대한 압력(토압과 수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전술적 치밀함, 치(雉)와 치마 돌쌓기
고구려인들은 물리적인 견고함에 더해, 적이 아예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완하는 전술적 건축 장치도 더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벽 중간중간에 네모나게 튀어나오도록 만든 '치(雉)'라는 구조물입니다.
꿩(치)이 제 몸을 숨기고 주변을 잘 살핀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 구조물은 성벽에 달라붙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직선 성벽만 있으면 성벽 바로 아래에 붙은 적을 공격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튀어나온 '치' 위에 올라서면 성벽 밑의 적을 완벽하게 내려다보며 좌우 양방향에서 화살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벽 맨 아래쪽에는 성벽이 앞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계단식으로 돌을 덧쌓는 '치마 돌쌓기(기단 보강 구조)'를 적용했습니다. 적이 공성퇴(성문을 부수는 큰 통나무 장치)나 사다리를 가지고 와도 이 보강 구조 때문에 성벽 본체에 쉽게 밀착할 수 없었습니다.
고구려의 산성은 단순히 돌을 높이 쌓은 벽이 아니었습니다. 지형의 한계를 역으로 이용한 그랭이 공법, 자연의 수압을 다스리는 옥수수알 성돌, 그리고 적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전술 구조물이 결합한 '당대 최고의 방어 엔지니어링'이었습니다. 고구려가 거대한 제국들을 상대로 당당히 국경을 지킬 수 있었던 철옹성의 실체는 바로 이 과학적 장인 정신에 있었습니다.
핵심 요약
고구려는 울퉁불퉁한 자연 바위 모양 그대로 성돌을 깎아 맞추는 '그랭이 공법'을 사용해 지진 충격을 흡수하는 면진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성돌의 뒷부분을 뾰족한 옥수수알 모양으로 만들어 성벽 깊숙이 박았고, 내부에는 잡석을 채워 폭우 시 수압을 자연스럽게 배출했습니다.
전술 구조물인 '치'를 설치해 성벽 밑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4편에서는 척박한 북방 환경 속에서도 풍요로움을 잃지 않았던 고구려인들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벽화 속 달콤한 일상, 고구려인들은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를 연재합니다. 무덤 벽화에 그려진 주방과 고기구이, 그리고 발효 음식의 대가였던 고구려의 식문화를 생생하게 복원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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